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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인지는 좀 헷갈림.] 청량리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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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인지는 좀 헷갈림.] 청량리 블루스

쩡! 하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너무나 짧고 간결하게 들린 소리라서,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가만히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뒤섞여 버리는 그런 소리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형광등이 냉장고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미처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것을 보았다. 책상에 쌓인 CD들이 둥글게 모여 브릿지를 하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숨을 멈추고 돌아보는 것도.

장사익 CD는 입을 벌린 채 멈추어 버려, 물고 있던 담배가 아랫입술에 붙어 대롱거리고 있었다. 다트 화살들은 가엾은 푸른 토마토를 살해하려고 구석에 모여 있었고, 나머지 4개의 토마토들은 부들거리며 한층 더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지러운 방안은 어수선한 담배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에는 이들이 실수한 것이다. 나는 눈을 뜰 때 늘 그렇게 쩡! 하고 온통 세상이 울릴 것 같은 소리를 내야만 했고, 그들은 즉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신성한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잘못되어 영원히 분리 되어 있어야 할 두 개의 세계가 겹쳐져 버린 것이다.

여하튼 우리가 사는 세상엔 인생보다 복잡한 사건이 늘 벌어지고 있으므로 별별 일들이 다 있게 마련인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실수를 용서하기로 0.005초안에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방안에는 텅 빈 아침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면 Eddy Louiss 의 곡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둥실거린다. 대개는 틀림없이 Sang Mele가 떠돌기 마련이다. 성장기 사내들이란 의리니 우정이니 하는 것을 매사 이리저리 잘도 가져다 붙인다. 항상 비장한 느낌. 느와르 적이고 조금은 폭력적인 행동. 덜 익은 청년들의 거친 행동엔, 이곳저곳 돌출한 문제꺼리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뭐라고? 아직 총각이라고!”

그렇게, 엄청난 일이 있는 것처럼 다들 기막혀 했고, 가운데 서 있는 친구는 죄라도 지은 양 기어들어가는 쥐의 꼬리가 되어 버린 음성으로 쪼그맣게 고백했다. 그는 항상 차분한 음성으로 나직하게 말을 했으며, 의리라든가, 울분이라든가 그런 쪽에 민감했다. 작은 칭찬에도 하루 종일 싱글거리는 타입이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주관적으로 말할 때 착실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 개성 강한 친구들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 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였다.

늘 뭔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아낌없이 술도 사주는 지고지순한 존재였으므로 우리는 함께 심각하게 고민했다. 불행하게도 아직 여자 친구도 애인도 없었고, 게다가 순진하기까지 한 친구였으므로 당장 대책이 없었다. 해서 한 친구가 아이디어를 낸 것은 청량리 어디쯤에 있다는,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젊은 여인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순서대로 팔려 나가길 기다린다는 그곳으로 이 가여운(?) 친구를 데려 가자는 제안이었다.

해서 그쪽 방면에 조금 정통하다는, 어느 친구들의 그룹에나 한명쯤 있게 마련인, 늘 익살맞고 분위기를 띄워 내는 친구가 우리들의 주머니를 털어 그 가여운 친구를 위한 비용을 각출했다. 다섯 명의 어리숙한, 아니 한명은 안 어리숙한 친구들이 어슬렁거리면서 청량리로 갔다. 왠지 모르게 Spicy Pink로 정육점을 연상하게 하는 조명아래 여인들이 어쩐지 현실 같지 않은 미소를 내뿜고 있었고, 그녀들 중의 몇 명은 확실하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한명의 어리숙하지 않은 친구는, ‘조금 나이가 들어 남자를 귀여워(?) 해줄 줄 아는 여자라야 한다.’ 면서, 그러니까 두 번째 줄의 골목으로 우리를 인솔했고, 마침내 적당한 여인을 찾았다.

안 어리숙한 친구는 그녀와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 했고 마침내 안 어리숙한 친구와 조금 나이 먹은 여인이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우리들 중 가장 어리숙한 그 가여운(?) 친구는 귀밑까지 새빨갛게 되어 어깨근처를 떨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조금 나이 먹은 그러나 여전히 약간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여인의 손에 이끌러 그는 어디론가 골목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고, 나머지 한명의 안 어리숙한 친구와 세 명의 어리숙한 친구는 좌우로 이리저리 맴을 돌아 골목을 빠져나왔다. 정육점 여인들은 문을 두드렸고, 팔을 잡았고, 달려들어 안겼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식의 유혹을 확실하게 뿌리치게 된 것은 결국 주머니에 돈이 더 이상 없다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압력 때문이었다. 그래도 안 어리숙한 그 친구는 바쁘게 돌아 나오는 와중에서도 그녀들에게 끌려가고 안기고, 시비를 붙이며 즐거워했다. 아무튼 세상에는 별별 타입의 사람들이 다 있는 것이다.

그 후 며칠간 우리가 돌아 나온 후의 시간이 그에게 어떻게 흘러갔는지 무진장 궁금했지만 그 가여운(?) 아니, 이제는 아마 가엾지 않을 친구를 볼 수가 없었다. 우리들 중 가장 안 어리숙했던 한 친구에게 물어 봤다.

“너 그때 그 여자에게 뭐라고 말했니?”
“숫총각이니까 잘해 달라고.”
“뭐? 뭘 잘해줘.”

우리는 달려들어 그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았으나, 그는 아마도 가장 안 어리숙한 친구임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4일째 되던 때에 우리는 그 한때 가여웠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수척해져 있었고 뭔가 어른스러움을 풍기는 여유롭고 멋 적은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어찌 된 거야?”
“응 3일 동안 그녀와 함께 있었어.”

그는 간단히 대답했고 우리는 다시 그가 나 총각이야! 라고 고백할 때 보다 12배쯤 더한 충격을 받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때는 모두들 ‘충격을 먹었다!’ 라고 표현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12배쯤 더한 충격을 먹었다.

“아니 그럼 지금까지 계속 학교에도 안 나오고.”
“응, 정말 좋은 여자야. 나는 그녀가 점점 더 좋아 지구 있어.”

우리는 우리가 그에게 한 짓이 있었으므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도록 그는 그녀에게 자주 달려가곤 했고, 일주일에 절반쯤은 우리와 함께 생맥주집을 어슬렁  거리지 않았고, 기타 연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지도 않았고, 죽이게 예쁘다는 여학생들과의 미팅에도 끼질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나머지 한명의 안 어리숙한 친구와 예전보다는 많이 덜 어리숙해진 세 명의 친구가 만났다.

“야 그 자식 좀 말려야 되는 것 아니냐?”

우리는 딱히 적당한 이유를 대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가 그녀를 그만 만나야 한다는 것에 심정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무슨 근거로? 왜 그녀의 나이가 많아서? 그녀가 청량리를 분포지로 하는 거리의 여자라서? 그녀에게 그 친구를 잘 부탁한다고 데려다 준 것은 바로 우리라고. 그 친구가 누구를 사랑하든 그건 그의 판단이야.”

우리는 답답했고 불길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열심히 일했으며 성적도 변함없이 좋았다. 다만 그가 만나는 여자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찌 되었건 우리가 만나게 해준 여인 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은 아마도 지금은 그 친구보다 훨씬 어리숙한 상태에 있을 우리의 신경을 긁어 대고 있었고 불길했다. 우리가 그러한 고민에 빠져서 전전긍긍하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쾌활했고 세상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성적도 좋았다.

뭔가 티잉~ 하고 끊어져 버릴 것만 같은 그러나 아무도 먼저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그는 짐작하지 못하는 긴장의 시간이 계속 되었다. 분명히 이제 우리들 중에서 가장 안 어리숙할 그가 그녀를 만나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날 무렵의 늦가을, 그는 우리에게 술 한 잔 하자고 했고 우리는 그러자 라고 했다. 학교 앞의 200원짜리 할머니 파전 집은 막걸리와 함께 우리가 극빈한 상태에서도 늘 술을 마시게 해주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감나무 집이었다. 그곳에는 천사는 없었지만 그보다 못하지 않은 인심 좋은 할머님이 계셨다.

“이 녀석들아 이젠 그만 마셔, 더 안 팔 거야.”

어쨌든 그곳은 그 할머님의 왕국이었고 우리는 때로 외상을 그어대는 철부지들이었다. 아마 그 할머님은 우리들에게 주기적으로 술을 공급하라는 특별한 명령을 받고 이 세상에 구현된 정의로운 이어도가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떠들어 대곤 했다. 몇 잔의 막걸리가 돌아가고 말이 조금 빨라지고, 어깨를 툭툭치는 즐거운 취기가 우리들의 가운데로 마침내 강림했을 때, 어느 친구들의 그룹에나 한명쯤 있게 마련인, 늘 익살맞고 분위기를 띄워 내는 친구가 물었다.

“너 그 여자 계속 만날 거냐?”

갑자기 모두들 조용해졌고, 툭~ 하고 팽팽하게 우리를 당기고 있던 어떤 것이 끓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다들 조금 긴장하고 있었고,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숨 막힐 것 같은 5초가 틱틱거리며 감나무집의 문을 걸어들어 와서 뒤편 화장실로 사라졌다.

“응,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나 이번 겨울에 휴학 할까 해, 군대도 가야하겠고. 조만간 그녀에게도 말해야겠지만, 군대 가기 전에 그녀랑 결혼 하려고.”

그렇게 말하는 그 친구의 뺨을 후려갈긴 것은, 나머지 얼이 빠진 네 친구들 중에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두들 흥분했다. 일부는 사법부가 되고, 일부는 언론이 되고, 일부는 훈육주임이 되어 그를 타이르고, 달래고, 후려갈기고 그렇게 스스로 지칠 때까지 친구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했다. 물론 우리에게 그가 그녀와 결혼하지 못하도록 권유할 만한  논리적인 설득을 할 아무런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탓이기도 했지만 그는 완강했다. 아무튼 세상에는 별별 타입의 사람들이 다 있는 것이다.     
   
며칠 뒤에 그는 멍자국으로 Corn Flower Blue가 된 얼굴을 한 채 조금 소원해진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 틈으로 유유하게 돌아 다녔다. 아직도 그는 쾌활했고 세상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여전히 성적도 좋았다. 그는 변함없었고 조금 뜨악해진 우리와도 그런 대로였고, 변함없이 그녀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점점 더 초조했다. 왜 초조하지? 라고 말한다면 너무나 할 말이 많았고,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다. 네 명의 친구들이 다시 만난 것은 도저히 이대로는 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지? 누군가가 제동을 걸어야해. 그 친구 부모님께 알릴까?”
“우리가 애냐? 뭐든지 부모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고하게.”

라고 말은 했지만 우리는 진짜 그의 부모님께 달려가서 사실을 고하고 그에게 엄청난 몽둥이 찜질이라고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다함께 얻어맞아 안면 이곳저곳이 시퍼렇게 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부 분명하게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이었다.

“그 여자를 찾아가자.”
“가서?”
“그 친구를 만나지 말아달라고 말하자.”
“무슨 근거로?”

우리는 거기에서 다 같이 말문이 막혔다. 당신이 거리의 여자이므로?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네 명의 더벅머리 가운데 누가 한때 아름다웠던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지난번엔 잘 부탁 한다고 말했지만, 그래서 미안하지만 이제 그만 내 친구를 떠나 달라! 고 선언을 하고 돌아 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임무는 내게 맡겨졌고, 나는 그러마! 라고 이야기 했다. 아니 그렇게 말한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렇게 말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어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찾아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 진실이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 내 친구에게서 떠나 달라.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녀를 찾아가는 것은 내 친구이고 결혼도 아마 일방적으로 결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녀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임에 분명했다. 해서 나는 세 명의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친구들을 청량리 입구 맥주 집에 남겨두고 결심을 허리춤에 단단히 차고서는 그녀를 찾아갔다. 다행이 그녀는 혼자였고,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보며 그녀는 말간 웃음을 조금 보여주었다. 초봄 새싹이 아직 차가운 겨울을 뚫고 나온 것 같은 질린 듯 Dark Turquoise의 파리한 웃음이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말해야 하지? 나는 답답했고, 그녀의 앞자리에 앉기가 정말 편안치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와 마주 앉았다. 아무튼 세상에는 별별 타입의 사람들이 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내 친구는 당신과 결혼을 해야겠대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떨구고 잔바람에 이는 물결처럼 조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아직 학교도 마치지 않았고, 아마 부모님이 아시면 보통 일이 아닐 것. 이라고 나는 주절거리고 있었고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고, 결국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서 어물거리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미소를 보았다. 저녁 무렵 길게 들판을 가로지른 전기 줄 끝에서 한참을 홀로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푸드득! 하고 어두워지는 하늘로 날아가 버린 듯한 미소.

앞 머리카락을 아래로 흐트러뜨린 채 그녀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고, 잠시 물결같이 고개를 저었고, 마침내 물기 가득한 미소를 묵묵히 노랗고 낡고 초라한 비닐장판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뭐래?”
“몰라.”
“모른다고? 너 무슨 이야기든 했을 것 아니냐?”

친구들은 답답하다는 듯이 무질서하게 내게 질문을 했고, 나는

“조용히 웃더라.”

그렇게 말했다.

“웃어? 왜?” 
“몰라! 이 자식들아 모른다고!”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고 그 서슬에 친구들은 일시에 갯벌의 꼬막같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묵묵히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고, 의혹 가득한 6개의 눈동자는 내가 들이키는 1,000cc짜리 잔을 따라 오르내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나머지 세 명의 멍청이들에 업혀 빙글거리며 일그러지는 길바닥에 몇 번의 구토를 하고 돌아온 기억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업혔었고, 택시에서 내려 구토를 했었고, 두 친구가 방에다가 던져 넣었다. 라고 다음날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엔 그 가여웠고, 덜 어리석었고 한 여인을 사랑했고 결혼을 결심했던 그 친구가 또 다른 멍청이들에 업혔었고, 택시에서 내려 구토를 했었고, 두 친구가 방에다가 던져 넣었다. 라고 그 다음날 들었다.

“어찌 된 거지? 사라져 버렸어.”

학교 정문 앞의 가나라는 어두컴컴한 카페에 제일 깊숙한 자리에 마주앉은 내게, 눈동자가
Dark Slate Grey로 텅 비어버린 그가, 수염이 꺼칠한 그가, 며칠 내리 술만 마셔댄 그가 말했다.

“사라져?”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꺼져 버렸어. 연락처도 없고 편지도 없고 쪽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어. 며칠간 미친 듯이 그녀의 흔적을 찾으려고 청량리를 샅샅이 뒤졌지만, 이젠 그녀가 현실 속에 실재 했던 사람이었나? 그것도 점점 믿지 못하겠어.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그녀를 몰랐었지? 전화번호도 주소도 이름도 진짜였는지 알 수 없어. 그녀는 정말로 그간 내 곁에 실재 했던 걸까? 나는 꿈을 꾸었던 것인가? 야 뭐라고 말 좀 해봐라.”

몇 병 되지도 않는 맥주에 그는 이따금 한숨으로 가라앉았고, 절규했고 이내 쉽사리 무너져 버렸다. 나는 결국 아무 말도 못했고 진실을 슬며시 시간의 담장 너머로 감추어 버렸다. 내가 너를 위해, 분명히 너의 창창한 장래를 위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했고, 앞 머리카락을 아래로 흐트러뜨린 채 그녀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고 잠시 물결같이 고개를 저었고 마침내 물기가 가득한 미소를 묵묵히 노랗고 낡고 초라한 비닐장판 위에 조용히 내려놓더라. 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임에 분명한 미소를 지었었다. 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몰랐고, 나머지 조금은 현명해진 세 친구들도 그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입을 다물었고 뇌 속을 말끔히 대 청소라도 한 것처럼 아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끔 명혜원의 청량리 블루스라는 노래를 들으면, 나는 여전히 그 조그만 방과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한 여인을 떠올릴 수 있다.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낡은 비닐 장판을 조금씩 문지르던 그 모습을 마치 어제일 같이 떠오른다. 아무튼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늘 다섯 배 쯤 더 독특한 타입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비에 젖은 세 그루 소나무 아래에서...

PS : 30년 전의 치기어린 행동들은 이제 모조리 범죄행위다. 당시 그런 행동이 불법이라는 의식이 없었던 것은 개인적이었나, 사회적이었나, 이젠 기억조차 희미하다. 잘 된 것이든 잘 못된 것이든 기억은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보물이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뿐이다. 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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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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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5

Sun_Life님의 댓글

슬프고 아프네요. 이제껏 느껴 보지 못했던 사랑 하는 감정을 잠시나마 느꼈을 그 여인 이였을 것 같은데.. 그 친구를 진정 사랑 했었나봐요. 그렇게 떠난걸 보면.

아직신입님의 댓글

너무 슬퍼요.ㅜ 순수했더랬죠..슬픈 사랑이야기네요.청춘의 ㅠㅠ아흑..

김명기님의 댓글

그 친구 지금 이 이야기를 기억이나 하려는지...  잘 지내고 있겠죠... ^~^

무니님의 댓글

아~ 빠지고 싶다 사랑이라면 더더욱이.......

도달님의 댓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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